가을이다. 지금쯤 고향집 앞마당 대추나무에는 따가운 햇볕 속에서도 추석 제사상에 오를 굵은 열매가 영글어가고 있을 것이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시인 장석주의 ‘대추 한 알’ 전문이다. 박장선(60) ㈜투데이아트 회장의 삶이 그랬다. 그의 인생은 태풍과 천둥. 벼락을 이겨낸 인간 승리이자 한국 케이팝(K-POP) 산업을 떠받쳐온 숨은 한 페이지다. 시계를 28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1997년 말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로 박장선은 날벼락을 맞았다. 서울 충무로에 투데이아트(todayart) 전신인 ㈜명진아트를 설립해 운영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갑자기 박장선의 휴대폰이 쉴 새 없이 터지고 무선호출기(삐삐)가 울리기 시작했다. 결제 대금으로 주고받은 기획사 어음이나 가계수표가 다 부도 처리된 것이다. 그렇게 무려 60억원 부도를 맞았다. 나이 서른셋, 한창 일할 나이에 전 재산이라고는 3천만원짜리 전세금뿐이었다. ‘돈도 없는 사람이 사업한다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사업을 하지 말고 직장생활 하라는 하늘의 계시로구나.’ 그는 절망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큰 결심을 한 그가 채권자 30여 명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전 재산이 3천만원짜리 전세 하나뿐입니다. 제가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저한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이 자리에서 결정해 주십시오.” 영세한 협력업체가 대부분인 채권자들도 그의 사정을 뻔히 아는 터였다. 한참 동안 회의를 하더니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박장선이 말했다. “언제 다 갚는다고 날짜를 정하지는 못하지만 버는 대로 양심껏 갚겠습니다. 그 대신 이자는 못 드립니다.”
투데이아트 역사와 함께 생산 제품들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에서 포즈를 취한 박장선 ㈜투데이아트 회장. 최근 케이팝의 글로벌 흥행에 문화적 충격과 함께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최영재 기자
60억원을 손에 쥐고 밤새 고민하던 그날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1년여 만에 60억원을 다 갚은 것이다.
주로 앨범 재킷 등 음반 패키지를 인쇄해 납품하던 그는 주문을 받으면 납기일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가수와 기획사들이 원하는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직원들과 밤을 새웠다.
역설적으로 IMF사태가 전화위복이 됐다. 시장 거래가 투명해지면서 외상거래가 없어지고 어음이나 가계 수표 거래가 사라졌다. 계약금을 받아야만 일에 착수했고, 납품과 동시에 대금을 받았다. 그렇게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았다. 그의 수중에 거짓말 같이 거금 60억원이 모아졌다.
그런데, 그도 사람이었다. ‘채권자들한테 반만 주고 나머지 반은 내가 운영자금으로 쓸까? 아니면 30%만 줄까… 그리고 벌어서 또 갚으면 되지!’ 그러다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나를 믿고 이렇게 기다렸던 사람들한테 이자도 못 주었는데 그러면 안 되지, 한 번에 다 갚자.’ 고민을 거듭하던 그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직원을 불렀다. “거래처 분들에게 전화해 며칠 몇 시까지 다 모여주시라고 전하게.”
그렇게 박장선은 빚 60억원을 다 갚았다. 추석 이틀 전이었다. 있는 돈을 다 털어 빚을 갚고 나니 부모님이 계시는 충남 대천에 갈 차비 한 푼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향에 들고 갈 선물은 있어야 했다. 개인 신용카드는 이미 대출 한도가 바닥난 터였다. 직원이 현금 서비스 한도 꽉 채우면 200만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돈을 100만원씩 나눠서 각자 그렇게 고향을 다녀왔다. 박장선의 30여 년 인쇄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그 뒤로 업계에서 ‘신용하면 박장선’이 됐다.
9월 10일. 경기도 파주에 자리 잡은 투데이아트 파주프린팅사업부 3공장을 찾았다. 방문자 리스트에 이름과 연락처, 방문 목적을 기록하고 출입카드를 발부받았다. 안내하는 직원들의 표정이 밝았다.
박장선 회장이 환한 얼굴로 취재진을 맞았다. 38년간 인쇄문화산업에 종사해온 그는 일찍부터 케이팝 연관 산업에 뛰어들어 갖은 고난을 이겨내고 지금의 알토란 같은 투데이아트로 키워낸 주역이다. 그의 사업장을 찾은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고 한다. 첫 번째, 3D업종의 사양산업인 줄 알았다가 깨끗하게 관리된 사무실과 최첨단 인쇄시설을 보고 놀란다. 두 번째, 인쇄업에 속하는 그의 회사 매출액 규모다. 투데이아트는 2024년 129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월간중앙과 인터뷰하는 박장선 회장. “우리가 30년, 40년이 지났어도 어릴 적 올드 팝송을 따라 부르듯이 지금의 전 세계 젊은이들도 미래에 케이팝 노래를 흥얼거릴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재 기자
케이팝 역사와 최신 트렌드 꿰고 있는 1세대
박 회장의 안내로 투데이아트 역사와 함께 생산 제품을 전시해놓은 뮤지엄에 들어섰다.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중 음악사를 수놓은 유명 뮤지션들의 앨범과 사진이 시대별로,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자체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케이팝 산업의 역사였다.
“O15B, 신해철과 무한궤도, 윤종신, 전람회 등 음반 재킷과 가요 테이프 가사집들입니다. 1996년에 이수만 SM 창립자가 강타, 문희준 등 5명의 남자 아이돌로 H.O.T.를 데뷔시키잖아요. 그때 지상파 방송 3사 가요 프로그램들이 H.O.T. 노래로 도배했어요. 이후 앨범 재킷 주문이 쏟아져 정말 주체할 수 없었죠.”
그는 자신을 “케이팝 산업의 한 틈새시장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낮추었지만, 기자가 보기에는 케이팝 역사와 최신 트렌드까지 다 꿰고 있는 ‘걸어 다니는 케이팝 사전’이었다. 엔터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박장선 회장은 아직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몇 남지 않은 ‘케이팝 산업 1세대’다.
90년대부터 SM기획, GM기획, 예당엔터테인먼트, 대영AV, YBM서울음반 등 대형 기획사들과 계약을 맺고 음반 패키지를 공급했다. 봄여름가을겨울, 이문세, 이소라, god, 보아의 음반 재킷은 물론 강타, 신화, 베이비복스 등의 화보집을 제작했다. 현재 SM엔터테인먼트 소속 25인조 다국적 보이그룹 ‘NCT’를 비롯해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8인조 다국적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굿즈도 생산하고 있다. 기자가 최근 인기 초절정인 한 아이돌 가수의 포스터를 유심히 바라보자 초상권 계약을 준수해야 한다며 사진 촬영은 안 된다고 했다. 공장에 들어설 때부터 보안에 엄격했던 궁금증이 풀렸다.
그가 기계실로 안내했다. “내일 하이델베르크 최상위 모델 1대가 들어와 이곳에 설치됩니다. 78억원짜리입니다. 기존에 38억원짜리 기계를 6대 가동하고 있는데, 올해 2대를 더 들여오는 겁니다.”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는 독일의 도시 이름이자 175년 된 인쇄 전문 기업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친환경 기계를 생산한다. 투데이아트는 친환경용지만 쓰고 무알코올 인쇄에 식물성 콩기름잉크를 사용하며, 현상액과 폐수 발생이 없는 등 오래전부터 친환경 인쇄를 해오고 있다. 2021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12색 오프셋 양면 친환경 인쇄기를 도입했다.
“인쇄업은 디자인의 차별화와 함께 색감, 인쇄 품질이 좌우합니다. 그래서 누가 첨단기계를 보유하고 있느냐에서 승부가 납니다. 투데이아트는 세계 어느 인쇄회사와 견주어도 될 만큼 시설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투데이아트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인쇄 현장에 도입해 업계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해 왔다. 사진은 투데이아트가 보유한 독일 하이델베르크 친환경 인쇄기. [사진 투데이아트]
박 회장에 따르면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제작된 인쇄기를 사용한다. 투데이아트가 보유한 하이델베르크 인쇄기 10대 가격은 일제 인쇄기 70대를 구매할 수 있는 금액이란다. 그는 최고급 인쇄기로 케이팝의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면서 영업망도 해외로 확장해갈 계획을 세워뒀다고 했다.
투데이아트 공장은 모든 공정이 자동화된 스마트팩토리다. 이미 2008년에 ISO 9001(품질 관리)과 ISO 14001(환경 관리) 인증을 받는 등 품질과 환경을 동시에 고려한 경영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인쇄 현장에 도입해 업계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해 왔다.
“기계실은 반도체 회사의 클린룸처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작년에 일본 인쇄업체 50여 곳이 우리 회사에 벤치마킹하러 왔어요. 하이델베르크가 아시아판 홈페이지에 우리 회사를 첨단 인쇄기를 도입해 활용한 모범기업으로 소개해놨더라고요.”
세계 최고 친환경 인쇄기 보유한 강소기업
그의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해외 출장에 주말도 없이 일하느라 사무실에서 먹고 잘 때가 많다고 했다. 요즘 케이팝이 글로벌 대세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의 무속신앙과 민속문화를 케이팝 및 판타지 서사와 결합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박 회장도 케이팝의 인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지 궁금했다.
“남미에서 열린 쇼케이스(공연 발표행사) 현장에 갔어요. 현지 관객들이 한국말 노래를 따라 하고 눈물까지 흘리더군요.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소풍 가면 카세트에 나오는 올드 팝송 틀어 놓고 춤추고 영어 가사를 한글로 적어서 따라 부르고 했어요. 저는 그걸 ‘문화적 침투’라고 얘기하는데, 그런 상황들이 재현된 겁니다. 우리가 올드 팝송을 지금도 따라 부르듯이 지금의 전 세계 젊은이들도 미래에 케이팝 노래를 흥얼거릴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도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투박하고 진솔하면서도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그의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속 그림이 눈에 띄었다. 무수히 많은 황금색의 노란 콩무더기와 구유. 그 속에 작은 새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에게는 자만을 경계하는 ‘겸손’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충남 보령 주포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대천과 예산에서 자랐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축구선수를 꿈꿨지만 대성할 정도는 아니었다. 군대를 마치고 직장을 구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는 1987년, 사촌형의 소개로 서울 영등포 인쇄공장에 취직한다. 당시 50만원을 들고 상경했는데, 연탄 때는 자취방 보증금에 사글세를 내고 나니 남는 게 없더란다.
90년대 초반, 그는 ‘명진애드’라는 회사로 옮겨 음반 재킷 사업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일거리를 준다면 기획사 사장 앞에서 폭탄주 수십 잔을 마셔대는 중노동도 마다치 않았다.
어디 대추 한 알이 그냥 여물었겠는가. 그의 인생도 천둥과 번개가 여러 번이었다. 박 회장은 97년 IMF 고비에 이어 2002년 또 한 번 날벼락을 맞게 된다. 이른바 ‘연예계 비리 사건’의 불똥이 그에게 튄 것.
“검찰 강력부에서 유명 연예기획사 대표를 조사하면서 저를 그 대표의 비자금 공급책으로 엮은 거예요. 거짓말 탐지기 조사까지 받았어요. 혐의는 벗었지만 연예계 관련 사업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게 됐지요. 명진아트가 2003년 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할 정도로 회사 경영은 좋아졌지만 ‘이 업을 계속해야 하나, 본질적 고민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기획사를 M&A(인수합병) 회사에 넘겼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회사를 물적 분할해서 다시 인수한다. “그동안 고생한 것들이 너무 아깝더군요. 합병한 회사에서 내가 이 분야 전문가라면서 다시 경영을 맡아달라는 요청도 있었고요.”
박장선 회장이 그의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대형 그림 앞에 섰다. 무수히 많은 황금색의 노란 콩 무더기와 구유 속에 작은 새 두 마리가 있는 그림이었다. 그에게는 자만을 경계하는 ‘겸손’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최영재 기자
중기중앙회 문화콘텐츠진흥위원장으로 맹활약
2005년, 지금의 투데이아트가 그렇게 탄생했다. 현재 투데이아트는 엔터테인먼트 앨범 및 굿즈 기획과 제작에서부터 기업홍보물 기획, 디자인·제작·인쇄·포장·물류까지 일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 주문생산이고, B2B 비중이 높아 사업도 안정적이다. 케이팝을 대표하는 기업 SM, JYP, YG, HYBE를 비롯해 KDB산업은행, 현대백화점 등이 주 거래선이다. 투데이아트는 업계 최고 대우와 함께 매년 해외 연수를 지원하는 등 직원 복지에 애쓴 공로로 2013년 ‘일하기 좋은 으뜸 기업’으로 선정됐다. 2014년에는 국세청으로부터 아름다운 납세자 표창도 받았다.
“전체 직원이 150명입니다. 한 50명이 일할 때는 이름과 얼굴도 다 알았었는데, 이제는 너무 바빠서 이름을 다 외우질 못해요.” 그의 얼굴이 대추알처럼 붉어졌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박 회장의 대외 활동도 많아졌다. 그는 투데이아트 본사가 있는 서울 필동경제인협회 회장으로 오랫동안 봉사해왔고, 현재 한국인쇄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올해 2월 중소기업 중앙회에 정회원으로 가입했고 9월 12일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에 선임됐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께 ‘인쇄업에 30년 넘게 종사해왔지만 저는 사양 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미래 산업이다’는 소신을 말씀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이시더군요,” 김 회장이 중소기업 중앙회 내에 문화콘텐츠진흥위원회를 신설하고 그에게 위원장을 맡긴 이유다. 현재 뷰티, 가구, 완구, 푸드, K-팝, 미용 등 중소기업중앙회 관련 산업 이사장 등 20여 명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5월 23일, 박 회장은 ‘2025 대한민국중소기업인대회’에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지난 30여 년간 인쇄문화산업의 기술 혁신과 케이팝 산업의 세계화, 사회적 책임을 꾸준히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박 회장은 매년 서울공업고등학교에 장학금과 해외 연수를 지원하는 산학 협력을 통해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그가 사업 초기에 고생하던 시절 은인이었던 신동식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한국항공대(총장 허희영)를 찾아 10억원을 기부했다. 항공대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교내 산학협력관 1층 강당을 ‘투데이아트홀’이라 이름 짓고, 지난 7월 그에게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업계에서는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은혜를 갚은, 결초보은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회자된다.
박 회장과 헤어지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었다. 1년 만에 60억원을 다 갚은 그 기적은 대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기막힌 사연이 있을 듯했다. 그는 앨범 재킷, 가요(歌謠) 테이프 인쇄 대량 주문을 받았다고 했다.
“90년대 말~2000년대 초에는 주로 라디오를 통해 대중들에게 노래가 홍보되고 음반가게와 길거리 행상을 통해 유통됐는데, 크게 히트하면 수십만 개씩 팔려나갔죠. 그래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케이팝 거물 이수만, 박진영 대표와 오랜 인연”
박 회장은 자신이 협력업체들과 결제일을 확실히 지키는 등 상생협력을 사업 원칙으로 삼은 데는 SM과 JYP 경영 사례가 본보기가 됐다는 말도 했다.
박장선 회장은 “이수만 SM 창립자와 30년, 박진영 JYP 대표와 20년 넘게 인연을 맺어왔다. 아티스트를 떠나 사업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수만 SM 창립자는 1989년 가수 현진영을 발굴하고 캐스팅·트레이닝·마케팅·매니지먼트가 하나로 움직이는 케이팝 사업 체계를 설계한 케이팝 거물이다. 박진영 JYP 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는 최근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됐다. 이재명 정부도 케이팝, 케이드라마 전성시대를 맞아 문화산업을 국가사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박 회장 역시 기대가 큰 듯했다.
“글로벌시장에서는 BTS 못지않게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도 유명합니다. 8인조 다국적 보이그룹으로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7주 연속 1위에 올랐는데, JYP 박진영씨 작품이죠. 정부에서도 K-팝을 더 활성화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박 회장은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하는 발언도 잊지 않았다.
“중소기업들은 급격한 AI 전환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최근의 외부 환경 변화에 독자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월간중앙(https://www.m-joongang.com)/ 나권일 월간중앙 선임기자 na.kwonil@joongang.co.kr